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운은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말과는 조금 다르게, 나는 진짜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늘 열심히 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나름 재미있게 공부에 매진했던 시절도 있었다. 전공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고민했던 시기도 있었다. 늘 혼자 고군분투하며 과제를 하고 시험 공부를 하였고, 한번은 몇몇 학생들이 족보를 돌려보는 걸 목격했다. 그런 나를 안쓰럽게 여겼는지, 한 선배가 다가와 말했다.
"혼자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지 말고, 같이 하자."
그렇게 해서 학교 중앙 동아리인 리눅스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동아리에는 유독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가장 친하게 지냈던 두 선배를 보며, '개발은 내 길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졸업 후 개발자가 되지 않는 길을 고민하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너무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스스로를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너무 빨리 개발을 포기한 게 아닐까 하는 후회도 든다. 당시 나와 비교했던 두 선배 중 한 명은 지금 게임사의 CTO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혼자 팀을 꾸려 팀장과 팀원의 역할을 모두 해낼 만큼 뛰어난 사람이었다. 애초에 비교 대상이 잘못됐던 것 같다.
또한, 그때 개발자의 현실은 지금과는 달랐다. 근래에는 주니어도 억대 연봉을 받는 판교 개발자가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그 당시엔 월화수목금금금의 구로디지털단지 개발자가 힘든 직업으로 여겨졌다. "지인이 아이 돌잡이에 마우스나 키보드를 슬쩍 올리면 절연하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빠르게 개발을 포기하고 웹로그 분석 솔루션 회사에 입사했다. 솔직히 말하면 개발을 포기했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었고,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도 잘 모른 채 입사했다. 당시 나는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직원이었다. 사명감보다는 주어진 일을 해내는 정도. (물론, 주어진 일만 잘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처음으로 이 일을 진심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공유하고 싶다)
그곳에서 나는 서비스사업팀에 배정되어 납품된 웹로그 분석 솔루션의 운영 및 지원 업무를 맡았다. 그때 배운 것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버텨왔고, '고인물이 더 오래되면 석유가 된다'는 말처럼 나름 이 분야에서 내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도 직장 생활을 하며 많은 오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철저한 계획과 준비 속에서 길을 개척한 것이 아니라, 정말 운이 따라주었고, 예상치 못하게 각광받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지금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분야에서 비교적 오랜 경력을 쌓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문득 내가 배워온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지식뿐만 아니라, 나의 고민과 성장 과정도 공유하고 싶다.
요즘도 "컴공이 전망이 좋다"는 이유로 진학했지만, 남들과 비교했을 때 뛰어나지 않다고, 적성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말해주고 싶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나처럼 마케팅과 IT의 경계에 있는 직무도 존재하며, 이 영역에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고. 오히려 IT를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디지털 마케팅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새로운 기술이 나와도 겁먹지 않고 달려들어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IT 전공을 했다고 꼭 개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급변하는 환경에서 앞으로 내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결국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나처럼 고민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또 혹시 나의 현재 모습에서 과거의 본인을 떠올리는 선배님이 계시다면, 언제든 따끔한 조언을 부탁드린다.